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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초성이와 함께하는 갑돌씨의 하루
글쓴이 : 고갑천 작성일 : 2007-01-25 14:30:24 조회수 : 830

초성이와 함께하는 갑돌씨의 하루

갑돌씨는 아내 갑순씨, 딸 영이, 아들 영수와 함께 사는 회사원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유선방송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손에는 초성이가 표시된 리모컨이 들려있다. 예전에 갑돌씨는 TV를 켠 뒤, 숫자만 표시된 리모컨으로 채널번호를 선택해야 했으나, 초성이가 표시된 리모컨을 쓴 뒤로는 채널번호를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가 숫자와 초성이가 함께 표시된 리모컨 버튼으로, 뉴스의 ‘뉴’에 해당하는 ‘2(ㄴ)’버튼과 ‘스’에 해당하는 ‘7(ㅅ)’버튼을 누르자, 이제 막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뉴스가 끝나자 오늘 날씨가 궁금했다. 그래서 갑돌씨는 전화기를 들고 기상안내 서비스에 전화를 걸었다. 날씨 안내는 700국에 ‘기상안내’이다. 그가 ‘기상안내’의 초성이 방식인 ‘ㄱㅅㅇㄴ(기상안내)’를 누르자, 초성이 ‘ㄱㅅㅇㄴ’에 대응하는 숫자 ‘1782’가 입력되면서 그 번호로 ‘기상안내’ 항목으로 접속되었다.

날씨안내를 다 듣고 나니 오늘의 농산물 시세가 궁금했다. 왜냐하면 내일은 갑돌씨 어머님의 생신이어서 사과 한 박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전화기를 들고 ‘700-ㄴㅅㅅㅅ(농산시세)’를 눌렀다. 그러자 “원하시는 농산물 이름의 초성만 입력하세요”라는 안내 말이 나왔다. 그래서 ‘ㄱㅇ(과일)’이라고 누른 뒤, 다시 안내에 따라 ‘ㅅㄱ(사과)’를 누르고, 또 안내에 따라 ‘ㄱㄱ(고급)’을 눌러 마지막으로 사과의 품질까지 선택했다.

갑돌씨는 아침식사를 하고 회사에 출근하려고 자신의 자동차로 갔다. 물론 그의 자동차 문에는 초성이 방식 숫자판이 붙어있기 때문에, 갑돌씨는 자동차 키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의 자동차 문 숫자판에는 1~0까지 10개의 버튼이 있고, 그 10개의 버튼에는 ㄱ~ㅎ까지 숫자와 한글초성이 나란히 표시돼 있는데, 집에서 쓰는 리모컨 자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자동차 문을 여는 암호는, 그의 아내가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는 ‘안전운전하쇼이(ㅇㅈㅇㅈㅎㅅㅇ’이다. 그는 아내가 안전운전하라는 따뜻한 당부의 말을 기억하면서 ‘ㅇㅈㅇㅈㅎㅅㅇ’ 순으로 버튼을 눌렀다. 차문이 열리자 시동을 걸고 직장으로 향했다.

한적한 도로로 나오자 갑돌씨는 아내 갑순씨에게 잊고 온 말이 생각나 차를 길옆으로 붙이면서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도 초성이 방식이 가능한 자판이 구비돼 있다. 전화기 숫자판에 있는 <단축>이라는 버튼을 누른 뒤, ‘마누라’의 초성이인 ‘ㅁㄴㄹ’을 누르자, 자동으로 5(ㅁ)-2(ㄴ)-4(ㄹ)가 눌러졌다. 즉 전화기 내 <524>라는 단축번호에 갑돌씨의 집 전화번호 0631-823-7408을 대응시켜 놓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전화번호가 출력돼 갑돌씨 집 전화로 접속되었다. 10개의 숫자로 된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대신, 단지 'ㅁㄴㄹ(마누라)'만 입력하여 전화를 신속히 접속할 수 있어 운전에 지장을 주지 않고 안전운전을 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 오늘 부모님께 보낼 사과를 사 놓으라 부탁하고 전화를 끓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문서를 꺼내기 위해 캐비닛으로 갔다. 문서 캐비닛 자물쇠도 역시 자동차 키와 똑같은 초성이가 표시된 자판이 붙어 있다. 암호는 '열심히' 이다. 그가 'ㅇㅅㅎ(열심히)'을 누르자, 캐비닛 문이 열려 문서를 꺼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서 오늘의 시장정보를 검색하려고 농수산시장정보 서비스 회사에 접속하였다. 그런데 농수산 시장정보 인터넷 주소는 www.277-7996.com이다. 이 회사는 이 인터넷 주소를 만들 때 자신의 회사 상호 ‘농수산시장정보’ 초성 ㄴㅅㅅ-ㅅㅈㅈㅂ과 대응하는 277-7996이란 숫자를 회사 전화번호로 하고 다시 이 전화번호를 넣은 www.277-7996.com과 같은 인터넷 주소로 만들어 놓았다. 갑돌씨는 회사 상호만 알고도 이 회사로 전화도 걸 수 있고 인터넷 접속도 가능하다.
회사 사이트에 들어가기 접속하기 위해서도 역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이전 같으면 비밀 번호를 아내의 생일이나, 자신의 생일, 또는 주민등록번호 등을 가지고 했을 텐데, 초성이 방식을 알고부터는 뭐든지 말을 만들어 비밀번호로 쓰게 되었다. 그의 인터넷 접속 비밀번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세종대왕'이다. 그는 ‘세종대왕’이라는 네 글자에서 초성이(ㅅㅈㄷㅇ)만을 눌러 인터넷에 접속해 자기 업무분야를 둘러보았다.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친구 삼식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삼식이가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하여 갑돌이는 식당을 예약해야 했다. 식당 전화번호는 찾을 필요가 없다. 그가 알고 있는 식당의 전화번호는 모두 한글 초성이 번호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가 예약하려는 식당은 전화번호가 '맛좋은-한국식당'이다. 숫자판을 보고 'ㅁㅈㅇ(598)-ㅎㄱㅅㄷ(0173)'을 누르자, 한국식당 안내인이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맛좋은 한국식당입니다" 라고 했다. 식당 예약을 끝내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직장에서 쓰는 전화기는 초성이 단축 기능이 없어 전화번호를 직접 눌러야 한다. 전화번호는 국번이 823번이고 그 뒷번호는 7408이다. 그는 몇 년 전 숫자암기법 책(각 수치별로 암기용 글귀를 대응시킨 사전)을 보고 각 수치에 해당하는 글귀를 찾았다. 숫자암기법 책에서 823에 대응하는 글귀를 찾아보니 '오늘도', '옛날도'가 있었고, 다음으로 7408에 대응하는 글귀를 찾아보니, '사랑해요', '새론행운' 등이 있었다. '오늘도'와 '사랑해요'라는 말을 조합하여 기억하기 좋은 '오늘도 사랑해요'란 말로 한글 전화번호를 만들어 두었다. '오늘도 사랑해요'란 말에서 초성이(ㅇㄴㄷ-ㅅㄹㅎㅇ)를 누르자,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아침에 부탁한 사과를 아내가 잘 준비했는지 확인하였다. 갑돌씨의 글귀 전화번호 '오늘도 사랑해요'가 참 좋아 다른 사람에게 이 글귀 전화번호를 말하면, 누구나 한 번 들으면 다시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며 갑돌씨네 집 전화번호를 무척 부러워한다.

아내에게 전화를 끝내고 갑돌씨는 오늘 저녁 친구를 만나는데 필요한 돈을 찾으러 회사 현관에 있는 현금인출기로 갔다. 현금인출기에도 역시 전화기 숫자판과 같은 초성이가 표시된 숫자판이 구비돼 있다. 카드번호도 지금은 한글로 바꾸었다. 긴 번호라서 좋은 말이 만들어지지 않아 몇 가지 단어를 나열하는 것이어서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몇 번 써보니 그 단어들이 외워져 이제는 긴 카드번호도 글귀로 암기하고 있다.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넣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비밀번호 글귀는 '티끌모아(3158) 태산(37)'인데, 돈을 찾을 때마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갑돌씨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여러 군데 전화를 했다. 전화번호는 100-제일은행(ㅈㅇㅇㅎ = 9880), 310-금호고속(ㄱㅎㄱㅅ = 1017), 200-서울시청(ㅅㅇㅅㅊ = 7879), 320-순대국집, 300-삼성생명, 330-영락교회, 333-함흥냉면, 235-서울청과, 2000-서울극장, 2200-삼양라면 등이었다. 모두 국번은 숫자이지만 앞으로 전화국에서 한글번호 전용국을 광범위하게 설치한다고 하니, 앞으로는 국번조차도 기억할 필요 없이 바로 전화통화가 가능할 것이다.

갑돌씨네 딸 영이는 지금 학교에서 로그함수를 배우고 있다. 선생님은 로그함수를 공부하기 위해서 로그 3∼5 값을 암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 또한 숫자를 그대로 암기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글귀로 기억하도록 도와주셨다. 즉 로그 3 값은 .4771인데 '로스시켜'란 글귀로, 로그 4값은 .6021인데 '밥해놓고'로, 로그 5값은 .6990 인데 '부자족해'로 바꾸어 외우니 쉽게 로그값을 외울 수 있었다.

아들 영수는 국사 연대를 매우 잘 기억한다. 고조선 창건과 패망을 '너도통닭(ㄴㄷㅌㄷ = 2333)’, ‘구하라(ㄱㅎㅇ = 108)’로 외웠는데, 이 글귀 형식을 통해 2333년과 AC 108년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오후에 갑돌씨 부인 갑순씨가 시내로 외출했다. 갑순씨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귀가가 늦어졌다. 갑돌씨의 집은 가정 자동화 장치가 되어 있어 외부에서 전화로 밥솥의 스위치를 켤 수 있으며, 각종 전자기구도 작동시킬 수 있다. 갑순씨는 먼저 집으로 전화를 걸어 가정 자동화 안내 신호를 듣고서 'ㅂㅎ'을 눌렀다. 과거 같으면 '밥해'라는 말에 해당되는 번호 60를 암기하여 입력했으나, 지금은 '밥해'라는 말에서 각 글자의 초성자음(ㅂㅎ)만을 눌러 작동하도록 할 수 있어 참 편리했다.

때가 무더운 여름인지라 집에 들어가면 집안이 너무 더울 것 같아, 집에 들어가기 전에 냉방기를 가동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냉방'이란 말의 각 글자의 초성자음 'ㄴㅂ'을 눌러 집에 있는 냉방기를 가동시켜 놓았다. 민자씨가 집에 들어가면 밥솥에 밥은 다지어져 있을 것이고 집안은 시원할 것이다.

다시 갑돌씨로 돌아와서... 그는 오늘 일을 마치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한 식당으로 가서 친구와 식사를 한 뒤 노래방에 갔다. 갑돌씨가 먼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노래 제목은 '소양강 처녀'이다. 과거에는 노래 제목에 대응하는 번호를 찾아 입력하면 음악이 연주되었으나 이제는 노래방 노래 번호 입력 버튼에도 초성이가 표시돼 있다. 'ㅅㅇㄱㅈㄴ'을 누르자, '소양강 처녀' 노래 반주가 시작된다. 한 시간 정도 노래방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왔다. 집문 현관 도어록(자물쇠)에도 역시 한글 자음이 표기된 숫자판이 있다. 집 자물쇠의 비밀번호는 '나의천국' 이어서 'ㄴㅇㅊㄱ'을 누르자 현관문이 열렸다. 아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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